The Line Cutting a Circle

The Line Cutting a Circle

원을 베어버린 사선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실제 달력 크기_2016
The line cutting a circle_archival pigment print_Actual size of calendar_2016

서울시 은평구 소재 현 서울혁신파크라는 곳이 있다. 과거 질병관리본부로 사용되었던 연구단지로서 지금은 타 지역으로 본부가 이전하고, 외부세계와 단절 된 체 일정기간 방치되어 오다가, 서울시 지역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나는 이곳을 지난해 개발 이전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우연히도 그들이 남기고 떠난 몇몇 사물들 중 유독 벽에 걸려 있는 아주 오래된 달력 몇 개에 집중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 시기에 나의 작업들, 즉 일상 속 반복적 행위에서 생산된, 원형으로 순환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쌓여가는 삶의 흔적들을 기록하여 보여 주던 일련의 작업들 <2014년에 태운 2015년>(2015), <예측 가능한 불확실>(2015), <칠하거나 지우기>(2014) 등과 연장선상에서 나의 관심이 집중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달력들은 흡사 외부의 호흡들로부터 차단된 진공의 상태에 보존 되어 오다 발견된 순간의 시점, 그 시점과 그 달력 위에 표기된 시점, 즉 사람들로부터 사회로부터 단절된 시작점에는 ‘틈’이 발생했으며, 그 간극은 비시각적이나 축적된 시간의 적지 않은 질량감을 심상(心象)의 차원에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비중인 작업 프로젝트 ‘원을 베어버린 사선’을 통해 위의 개인적 경험은 의미적으로 확장되고 시각적으로 구체화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우선 위와 같은 여러 다른 장소들을 리서치하고, 그 장소들을 방문하여, 달력과 그 달력이 걸려 있는 장소들을 함께 사진으로 기록하여 보여 주는 작업을 계획 중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나의 의도가 단지 순수한 시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작업이 관념의 세계에만 머물게 하려 하진 않는다. 작업은 우리의 삶을 가로질러 현실을 반영하며,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되고 해석되어지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 수집될 사진들은 주로 재건축지역이나 출입이 물리적 힘의 요소에 의해 제한되었던 지역을 통해 구하게 될 것인데, 이 지역은 원형적 순리의 시간을 살아가던 개인들의 시간이 사회적 이해의 역학적 관계에 의해, 직선적 역사의 시간에 의해, 단절 된 시간의 조각들이 극명히 드러나는 장소로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각 각의 달력이 달리 촬영된 시점은 이 사진의 고유번호이면서 또한 부제목 될 것인데, 이 제목은 사진 이미지의 멈추어진 날짜와 시간 차이로서 그 세월을 함유한다 하겠다. 그 차이가 오래되면 될수록 관객이 느낄 비시각적 시간을 감각의 차원에 느낄 그 질량의 무게는 늘어나 더 좋을듯하며, 작업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차이는 확연해서 효과는 상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결과를 나는 원형의 전시장 구성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데, 원형은 그 자체로 시간의 형상을 담고 있다 하겠다. 또한 전시의 시점은 가급적 12월이 좋으리라 생각하는데, 12월은 현재가 과거, 미래와 혼존하는 시기로서, 이시기는 평소 무디었던 시간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이 열리는 시기 이거니와 이 감각을 통해 삶에 대한 사유에 닿을 수 있기에 작업의 의미와도 통한다

우리는 ‘삶을 살아간다.’라 말한다. 여기서 ‘간다’는 표현은, 삶은 결국 시간의 흐름에 의해 정의되고 파악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말해준다 하겠다.
작업은 관념적 순수의 시간을 가로질러 사회의 이해관계에 의해 순리에서 벗어나고만 단절의 시간을, 원형으로 순환하는 개인적 시간을 관통하는 사회적 역사적 시간의 역학적 관계성을, 감각의 차원에서 보고 느끼게 하는데 있다.
나아가 작업은 ‘시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 속에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확장된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지게 될 것이다.

전시광경
거룩한 시간_2016_(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
installation view
The Holy Time_2016_(SeMA Nanji Residency, Seoul)

… 이번 전시는 원형의 두 공간이 서로 이어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전시실의 공간적 특성에 맞춰 각각 공간, 시간에 관한 작가의 단상들을 펼치고 있는데, 작가의 시간성에 관한 독특하기만 한 사유를 살펴볼 수 있는 작업이 오른쪽 전시공간의 원형 벽면을 둘러싸고 설치된 <원을 베어버린 사선>이다. 이 작업은 흐르는 시간의 마디를 잠시 비껴서 우리로 하여금 일상의 시간이 가진 갖가지 묘하기만 한 속내를 드러낸다. 달력의 기호적이고 정보적인 특성상 그것이 어느 한 시절의 시간들을 전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의 빛바랜 시간들을 담고 있기에 현재의 시점에서 조우하게 되는 것은 그러한 시간의 의미들이 탈각된 어떤 과거의 흔적들일 뿐이다. 특정한 시간 대신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 멈추어진, 지나간 과거의 퇴색한 일상의 기억들이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 그리고 그 시간이 잠시 동안 점했을 삶의 어떤 속내들이 가시적인 사물로서 전해지는 것이다. 특히나 재개발 지역의 폐허 같은 곳에서 수집된 달력들이라 더더욱 그 무상하고 허망한 느낌을 배가시킨다. 흐르는 시간의 흐름을 절단함으로써, 다시 말해 원형적인 순환의 시간은 물론 선형적인 흐름의 시간을 차단하여 시간을 현실의 일상적이고 경험적인 이미지들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삶의 시간이라는 어떤 묵직한 현실감 혹은 구체적인 질량감 같은 것들로 말이다. 이는 작가의 시간성에 대한 관심이 시간에 대한 개인적인 감각인식을 매개로 구체적인 사회적 시간들로 연결되는 것들이기도 하고, 동서양의 순환적이고 선형적인 기존의 관념적이고 개념적인 시간성과도 다르게 맞서 있음을 반증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숱한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음직한 재개발 지역의 시간의 마디를 벗어난 오래된 달력들은 시간의 차원이 단지 어떤 정보의 차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경험, 무의식이 복합적으로 반복 교차되고 축적된 것임을 드러낸다. 과거의 시간들이지만 현재에 의해 다시 재구성된 시간성이기도 하고, 종잡을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어떤 불안한 느낌들을 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이기도 하고, 그렇게 덧없는 시간의 무상성에 대한 토로일 수도 있겠다. 더욱이 재개발, 재건축을 반복하며 또 다른 순환과 직선적인 발전논리를 거듭하는 우리사회의 구체적인 현실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지나간 세월의 아련한 흔적들로 향하게 한다는 면에서 작가의 시간에 대한 관심이 개념적인 것에 앞서 감각적이고 질료적인 것들임을 확인하게 한다. 익히 알고 있는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각각의 달력들이 지시하고 있는 실재적 현존의 시간들, 그 시간들이 향하고 있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공간들을 향해 말이다. …

민병직 (대안공간 루프, 협력 디렉터)